머리 위로 피어오르는 뭉게구름과 적당히 선선한 바람, 약하게 내리는 소나기가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러나 이날은 여느 때와는 조금 다릅니다. 창문 밖에 비친 하늘이 기이할 정도로 맑았기 때문입니다. 그것만 제외하면 평소의 아침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던 그때, 열린 문 사이로 수호자가 뛰어들어옵니다. "오늘도 세이프!"라는 말과 함께 밝은 얼굴로 인사를 건넵니다. 평화로운 하루에 더해진 수호자의 온기를 느끼며 감상에 잠기고 있을 찰나, 수호자는 탐사자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이 여름이 그쳤으면 좋겠다." 그 말과 함께 1교시가 시작됩니다.
내일은 PC와 KPC의 결혼식입니다. 그러나 결혼 전의 연인이 종종 그렇듯, 두 사람은 사소한 계기로 크게 싸워버렸습니다. 이렇게 싸우고 엉망진창인 결혼식을 치를 순 없으니…… 역시 KPC를 달래주러 가야겠죠. 가뜩이나 기분도 안 좋은데 문 밖에는 비바람이 몰아치네요. PC가 한숨을 내쉬고 자동차 키를 챙기던 그 때, 초인종이 울립니다. “PC, 나야. 오전엔 미안했어. 지금 들어가도 될까?” KPC입니다. 인터폰 화면 너머의 그 얼굴이 유독 낯설게 느껴집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어쩐지…… 오늘따라 묘하게 성숙한 느낌입니다. PC가 문을 열어주면 KPC가 젖은 우산을 털며 들어옵니다. 서늘한 빗물에 얇은 셔츠가 달라붙어 살갗이 비칩니다. 오늘은 결혼전야. 밤늦도록 그치지 않을 비가 창문을 때립니다.
「오랜만에 얼굴 보고 싶어요.」 당신은 형사입니다. 옛날에 조직 보스씩이나 되시는 분과 엉망으로 입술을 부볐던 전과가 있기야 하지만, 현재는 다 잊고 평온한 삶을 살고 있는… 「토요일 오후 3시까지 XX 사거리 앞 카페로 나와요.」 평온한 삶을 살고 있는… …… 「꼭이에요! 」 「나오지 않는다면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어요.」 …아, 제발 저 좀 내버려 두시면 안 될까요?!
당신은 형사입니다. 1시간 전쯤만 해도 한 조직의 뒤를 캐라는 잠복 임무를 맡아 잘 숨어있던 중이었죠. 이번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한다면 승진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되었을 텐데… 인생이 참 호락호락하지가 않네요. 네, 여차저차 발각되었습니다! 팔이 뒤로 묶인 채 조직의 보스 앞에서 고개를 떨구고 있자면, 그 보스가 몹시 뜬금없는 말을 합니다. “지금 당장, 나에게 키스해요.” 예? “키스하라니까요.” 와, 심지어 총까지 들이대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니, 아니. 총은 내려놓고 이야기하셔도 되지 않을까요?
커다란 달이 뜨는 밤. 대상을 알 수 없는 비명이 낭자하고, 물어뜯긴 송장들이 즐비한 시간. 그리하여 아침이 떠오르는 다음 날이면…… 이빨을 숨기고, 발톱은 거두어 다가가자. 그것이 나의, 사냥법이니까.
사랑하는 나의 민들레에게. 네가 있었기에 너와 함께한 모든 날들은 맑은 날들 뿐이었다.
때는 온 세상이 얼어붙을만큼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겨울. KPC와 탐사자는 어떠한 이유로 겨울의 바닷가에 방문했습니다. 간만의 겨울 휴가여도 좋고, 함께하는 세미나 일정이어도 좋겠고, 운 좋게 당첨된 이벤트 티켓으로 인한 여행이어도 괜찮겠네요. 그래요, 여하간 두 사람은 지금 겨울 바다에 있습니다. 모든 것을 삼켜 버릴 듯 살풍경한 겨울의 바다는 그러나 스산한 만큼 운치있고 멋드러진 곳입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검푸른 파랑, 다소 싱겁게 느껴지는 바닷바람, 핏기 없는 해변의 모래사장. 손가락이 꺾일 것만 같은 매서운 날씨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을 만큼 이곳은 아름답고, 완벽하고, 특별하고. 그리고… 아, …차가워. 탐사자. 신발 가죽이 젖어드는 감각과 함께 정신을 차립니다. 그보다는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KPC의 목소리가 더 빨랐나요. 순서를 가늠할 새도 없이 살을 에는 냉기에 발끝이 곱아듭니다. 거품이 팔 할인 하얀 파도가 복사뼈를 적시고 부서집니다. 아무래도… 한 쪽 발이 통째로 젖은 것 같죠. KPC는 당황했거나, 혹은 어색한 표정으로 탐사자를 끌어당기며 말합니다. ━갑자기 바다 쪽으로 걸어 들어가서 놀랐어. 피곤하면 이만 들어가자.
지금 여러분이 듣고 있을 곳에서 가장 가까운 안전 지대는 캘버리 교도소에 위치해 있습니다. 좀비의 특성을 감안해 생존자 여러분은 최대한 해가 지고 움직여 주십시오. 낮에 움직이는것은 위험합니다. 그곳의 좌표는 xxx.xxx.xxx. 다시한번 반복합니다. 생존자 여러분은 캘버리의 안전지대로 와주십시오. 그곳의 좌표는...… 2020년.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동일한 질병 증세를 보였습니다. 곧 학자들에 의해 이 질병이 전례없는 바이러스 감염이 원인임을 알아냈고, 파이로젠 바이러스라 명명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과 미디어는 이 바이러스를 좀비 바이러스라고 불렀고, 최초 감염자가 발생한 시점부터 이를 좀비 사태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이 바이러스는 곧 전 지구를 장악했고, 인류의 70%이상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며 전 세계가 혼란에 휩싸였습니다. 오늘은 좀비사태가 발발한지 일년 7개월 12일째. 당신과 kpc는 이 절망적인 세상속에서 서로를 의지해가며 안전지대로 향하는 여정을 계속해오고 있습니다.